서평, 성민선 신작 에세이집 '날마다 전성기'

하루하루 자취를 살피는 생활인의 수행담론

2024-05-30     김태진 문화예술위원장

[서울=글로벌뉴스통신] 가톨릭대학 명예교수인 성민선 교수가 쓴 신작 에세이집 《날마다 전성기》가 최근 출간 되었다. 책이 발간되자마자 ‘하루하루 자취를 살피는 생활인의 수행담론’이란 제목으로 한국산문작가협회가 펴내는 「월간 한국산문」 6월호 ‘신작읽기’편에 소개되었다. 본보 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예술진흥과 독서진작 차원에서 문학평론가 김태진 교수의 《날마다 전성기》 서평(書評)을 전재하여 소개한다.  

(사진제공:성민선 교수) 신작 성민선 에세이집 '날마다 전성기'

저자는 ‘징금다리 꽃(2018)’, ‘섬세한 보릿가루처럼(2020)’에 이어 이번에 ‘날마다 전성기’란 세 번 째 수필집을 냈다. 젊은 시절엔 여기자로 사회복지분야 교수로서 기사와 리포트, 전공논문 등 평생 글과 함께 생활해왔다. 은퇴한 후에도 사회현상에 대한 시선을 멈추지 않고 펜을 들어 경책하며 산다. 전작인 ‘섬세한 보릿가루처럼’이 8세기 인도에서 티벳으로 불교를 전한 성인 ‘파드마삼바바’가 ‘생각은 하늘같이 광대하게, 행동은 섬세한 보릿가루 다루듯 해야 한다.’는 가르침에서 빌려왔다고 했다.

 이렇듯 글쓰기를 불교수행의 일환이란 생각으로 ‘날마다 전성기’를 살아가는 작가에게 하루하루 좋은 날이요, ‘지금 전성기’라는 일념 끝에 토해 낸 사념의 실타래가 아닐 수 없다. ‘날마다 전성기’를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도 그 길이 활짝 열려 있다는 희망’을 상재하며 모두에게 당당히 말한다. ‘우리 사회의 멘토가 되어 주는 분들로부터 받은 영감’이 저작의 동기라고 했는데 정작 스스로도 우리에게 선뜻 살가운 멘토로 다가와 있다. 나날이 좋은 날 행복을 전하는 전령사라 부를 만하다. 

(사진제공:성민선 교수) 저자 성민선 교수 사진 및 약력

이번에는 “미발표 원고 몇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난 4년간 썼거나 발표한 글들을 담았다.”고 밝혔다.

세상이 멈춰선 코로나 시기에도 자기성찰 기록을 이어간 것으로 볼 때 소소일상이나마 조고각하(照顧脚下)로 하루하루 자취를 살피는 생활인의 수행담론으로 읽어내야 할 이유다.

책 제목을 ‘날마다 전성기’로 정한 것 또한 ‘나날이 좋은 날(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란 선어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5부로 엮은 성민선 에세이집 《날마다 전성기(2024, 소소담담)》’는 날이면 날마다 하는 참살이 주인공의 자기 선언이다. 

(사진제공:성민선 교수) 문학비평가 신재기 교수 작품소개

‘1부 오늘도 좋은 날’로 시작되는 ‘날마다 전성기’에는 “지금에 집중하고 깨어 있으면 고요한 가운데 당면한 눈앞의 문제를 제대로 보고 그에 맞게 대처할 수 있도록 지혜가 떠오른다. ‘오늘도 좋은 날’의 기적을 불러들이는 이는 곧 자기 자신이라 하겠다.”(45면)고 단호하게 말한다. 

중국운문종 종주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선사가 제자들에게 “보름전(어제) 일은 묻지 않겠다. 오늘부터 보름 이후(내일)의 일을 어찌할지 말하라.”고 했다. 그들이 대답을 하지 않자 운문은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을 써보였다. 무엇이 좋은 날인가? 시시각각 피는 아름다운 꽃을 보는 그 순간도 단 한번이듯 매일 매일이 둘도 없는 가장 소중한 하루다. 그렇듯 성민선은 오늘에야 비로소 운문문하의 침묵에 ‘날마다 전성기’라는 답을 높이 들었다. 오호! 시절은 붉디붉은 홍매화가 툭 터진 춘삼월, 이제 그 꽃진 자리 오늘, 고준한 선문답이 피어선 진다.  

(사진제공:성민선 교수) '날마다 전성기' 서평이 실린 한국산문 6월호

 ‘2부 산책과 명상’의 ‘생각’에서는 “제발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제발 생각 좀 그만하고 살아라.” “제발 생각 좀 내려놓고 살아라.”를 되뇌이며 “아 생각이 들어왔구나. 또 만났구나. 너를 보니 반갑구나. 그래 너를 배척하지 않을게라면서 그 생각을 바라보며 그 생각과 친구를 해 주면 저절로 사라진다. 순간순간 알아차리는 삶을 산다.”(68면)는 그의 글을 보면 또 어떤가?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나를 녹여서 넣는다.’는 화가 장욱진(張旭鎭, 1917〜1990)의 일필이 연상된다. 그림 재료 그 무엇에 구애받지 않고도 몇 가지 소재들로 '일관성'과 '반복성'을 바탕으로 평생 그려왔던 작가와 닮아 있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의 ‘차이를 유지하면 반복하는 속성이 있다. 자타를 구별, 자신으로 끊임없는 회귀가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란 《차이와 반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루의 끝, 그 모두를 게워내 듯 양치를 하고 맨 얼굴로 거울과의 독대를 끝내고 두루마리 같은 일상복을 벗은 본 모습으로 잠자리에 오른다. 지긋이 눈감은 정혜쌍수, 천불천탑 운주사의 와불되어 마침내 모든 것이 사라진 구경자리에 머무는 모습이다. 

(사진제공:성민선 교수) 월간 한국산문(2024.6) 수록 '신간읽기(서평)'

 ‘3부 노인의 권리’중 ‘날마다 전성기’란 “지금이 나의 전성기야! 칠십 중반 우리의 전성기야! 글을 쓸 때 나이티를 안 내려고 애썼던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말해 주었다. 친구들에게 말해 주었다. 친구들아, 우리의 전성기는 아직 계속되고 있다고! 끝나지 않았다고!”(157면)”라고 작가는 본모습이 ‘지금,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산은 산, 물은 물(山是山水是水)”이란 화두는 분별하는 마음을 여의면 생사자유자재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이름으로 지어진 헛것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항상 여여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생로병사란 마음에 바탕을 둔 생각 따라 변해가는 것일 뿐 노사조차 없으니 노인은 그 이름일 뿐 나이든 청춘이라고 스스로 규정한다. 그러니 노인의 권리강화란 유엔협약 등 일절 보호막을 벗어던진 채 하루하루를 친구들과 자유분방으로 채워, 걸림 없이 사는 주체적 삶의 모습을 보인다.

 마치 중국 당대(唐代) 임제종(臨濟宗) 개조(開祖) 임제선사(?~867)의 《임제록》에 실린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즉 ‘어느 곳에서든지 주체적 인간이 되어라. 그러면 그 자리가 모두 참되다.’란 오랜 명문구의 자기식 표현이 아닐지?  

 ‘4부 감사의 씨앗’, ‘수필의 온도’에서 “내가 글을 쓰는 한 가지 이유는 그동안 배우고 받고 살아온 사회의 덕을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회향하고 싶은 마음, 즉 글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사회봉사를 하기 위함이다. 내 글이 나를 찾고 나와 소통하며, 나를 밖으로 확장하여 나로 인해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168 면)는 작가의 말을, 나를 넘어 이타적 삶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울림으로 되새긴다. 

평생 교육자로 살아온 작가가 말하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봉사한다는 다짐은 이 책 곳곳에 인본주의, 인간존중·복지·사랑·봉사·정의·민주주의·공동체정신·평화 등 그 가치를 드날리고자 애쓴 흔적으로 담겨있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홍익인간’의 올곧은 정신을 친근한 평어체로, 때론 허투루 말하듯 구어체 속에 숨기고 있다. 

불교 전적 곳곳, 법문들은 한결같은 말과 글로 주문을 하고 있다. ‘마음 밖을 향하여 진리나 도를 구하려 하지 말라’며 직접 자각의 실존·실천적 성찰로 궁극의 경지를 향하라. ‘평상심이 곧 도’란 말로 존재[實相]에 대한 투철한 체험·체증의 전제로서 성찰의 삶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작가는 대신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5부 끝없는 사랑’, ‘오늘은 또 무얼 버릴까’하며 “아, 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하는 알아차림이 그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좋으며 버릴 필요가 없다는 알아차림으로 전환되었다. ‘버릴 것’, 더욱 ‘날마다’라고 쳐놓은 그물도 홀연히 벗겨졌다. 본성 자리에서 의식 하나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잘했어. 넌 이대로 그대로 다 좋아.’라고 하는 것 같다.”(254면) 
 하지만 어찌 날마다 좋은 일만 있을 수 있는가? 나날이 좋은 일이 있는 그 길이야 말로 진리에 순응, 그 길 따라 수행하는 일이다. 마음에는 신라 천년의 미소를 담고 일어나는 생각을 이리저리 덧대어 횡설수설 엮어 때론 소리 내어 ‘좋아, 좋아’를 연발한 뒤 또 펜을 든다.

 “환한 대낮에 잃었던 그 길/밤이면 내 홀로 헤매는 그 길!// 들끓는 사람 틈 놓치인 그대/어쩌다 꿈에나 만나는 그대// 내 어이 말하랴 애틋한 그를/나 혼자 그리다 시어질 그를// 끓이고 태우다 잦아질 시름/고이고 붓나니 쌓이는 시름// 낮밤에 못 잊는 불멸의 영상(影像)/큰 번개 치는 날 만나리 만나리”(중얼거림) 《수주 변영로 시전집(1989)》.

 성민선식 ‘고해성사’로 들린다. 버리고 또 버리는 생활 속에서 일념화두를 지니고 이를 찰라간 포착하여 기록하는 작가의 삶을 그는 온전히 살아내고 있다. 

(사진제공:성민선 교수) 한국산문 수록 문학평론가 김태진 약력

 책장을 넘기며 드는 생각은 다정불심(多情佛心)과 불교교리를 바탕으로 한 그의 글을 따라 가다보면 촘촘하기가 세상을 다 엮을 만 하다는 것이다. 빽빽이 채워진 완성을 보는 건 그의 친절함과 간절한 사랑의 마음을 엿보기  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나 행간을 벌리고 여백을 더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나만의 바람은 아니리라. 그런데 어찌하랴 그도 어머니를 넘어 할머니가 되니 ‘길조심, 차조심’을 몇 번이고 말해야 스스로 안심이 되는 걸, 그것이 작가가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기쁨인 것을 책을 덥고 나서야 알겠네. 비로소 알겠네.
 애쓴 성민선 선생께 시 한 자락 올린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 구상(具常, 1919〜2004), ‘꽃자리’ 중에서

김태진 동아대학교 법학박사로 동 법무대학원 교수, 연세대 연구위원, 한국헌법학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논, 아득한 성자』, 『인왕반야경』,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헌법스케치』 등이 있다. 문학평론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불교문학 편집위원, (사)만해사상 실천연합 상임감사, 한국공무원불자연합회 고문, 한반도 미래전략 연구소장, 글로벌 문학상 심사위원장·문화예술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