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합리적 사회와 과학정신

2013-02-05     글로벌뉴스통신

 현대가 과학기술의 시대임을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성과인 각종 발명품이 없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기 어렵다. 정보통신과 교통수단을 비롯하여 주거형태와 각종 산업시설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더구나 우리는 이러한 생활방식에 익숙해져서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사고방식과 생활태도 뿐만 아니라 경제제도, 정치형태, 문화양식 등을 창출한다. 이러한 문명의 형태를 혐오하여 깊은 산골로 잠적하는 사람들도 기차나 고속도로를 이용하며, 이러한 현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른바 ‘문명비평가’들까지도 부지런히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린다. 이제 우리는 공기 없이 숨을 쉴 수 없는 것처럼 과학기술 없이 삶을 영위할 수 없다.

 과학기술시대의 갖가지 병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흔히 서양의 근대과학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정치혁명과 경제혁명을 거쳐 오늘날 현대사회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근간이 된 것이 근대의 과학혁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학기술이 곧 과학은 아니다. 과학기술은 다른 종류의 기술과 달리 과학지식을 활용해서 획득한 기술이다. 과학지식이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가치관, 그리고 인간관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지식은 주술이나 마술, 혹은 기도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자들의 엄격한 실험정신과 비판정신, 그리고 개방정신에 의해서 얻어진 각고의 산물이다. 이것을 우리가 ‘과학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면 과학은 과학기술과 과학지식 및 과학정신이라는 세 국면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과학기술시대에 살면서 과학기술은 무분별하게 향유하면서도 과학지식을 이해하는데 열중하지 않으며 과학정신을 터득하는데 있어서 무관심한 경향이 있다. 그것은 신앙인이 어떤 종교의 심오한 영성적 부분과 지혜보다 타산적 기복 신앙에만 매달리는 것과 같이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다. 이러한 태도를 가지면 오히려 우리의 영혼이 황폐하게 되듯이 과학기술에만 집착하면 현대의 위대한 과학정신이 퇴색되며, 따라서 우리의 삶을 파멸로 이끌어갈 위험이 있다. 중세가 기독교적 ‘기복’의 시대가 아니듯이 현대는 과학적 ‘기술’의 시대가 아니다. 이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온전한 자세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먼저 과학정신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 과학정신의 핵심은 비판적 합리성이며 그것이 합리적 사회를 구현하는 요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급속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서 오늘날의 번영을 이루었고 그것을 자타가 인정하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자세히 검토해보면 우리가 얻은 것 못지않게 잃은 것도 많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급히 치달려왔기 때문에 멈추어야 할 지점에서 멈출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왜 이렇게 급히 달려가는 것인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앞으로 달려가고만 있다. 지금까지 무한 경쟁에 너무 길들여져 있어서 황폐해진 영혼과 진정한 자아에 대해서 성찰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과학정신인 비판적 합리성을 터득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국가와 사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하여 활용할 때이다. 내가 우선 합리적이고 성숙한 인간으로 변모되어 있을 때 우리 사회는 합리적이고 성숙한 사회가 되는 초석을 쌓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 엄정식
·한양대 석좌교수·서강대 명예교수·전 서강대 대학원장·전 한국철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