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 행궁지 내전 거의 원형의 모습으로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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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행궁지 내전 거의 원형의 모습으로 발굴
  • 권혁중 기자
  • 승인 2013.10.1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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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원장 조유전)은 사적 제479호인 고양 북한산성 행궁지에 대한 1차 발굴조사를 내전지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번 발굴된 북한산성 행궁 내전지는 1712년(숙종 38년)에 준공되어 사용되다가 1915년 산사태로 매몰되어 지금에 이른 것으로 기록은 전하고 있다. 참고로 행궁(行宮)은 왕이 거둥할 때 임시로 머무르는 별궁(別宮) 또는 이궁(離宮)으로 불리는데, 왕이 집무를 보는 공적 공간인 외전과 왕이 거처하는 사적 공간인 내전으로 구분된다. 

   
▲ (사진제공:경기문화재단)북한산성 행궁지 사진(1902년 촬영, 출처: 關野貞, 1904, 韓國建築調査報告)

 북한지(北漢誌)󰡕(聖能, 1745)에는 행궁의 규모를 115칸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 중 내전영역은 54칸 규모로 내전(內殿), 좌우행각방(左右行閣房), 청(廳), 중문(中門), 대문(大門), 수라소(水刺所), 측소(廁所)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료의 내용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하여 두 개의 단을 이루며 기반시설을 잘 갖춘 내전 일원의 모습으로 확인되었다. 

   
▲ (사진제공:경기문화재단) 북한행궁지 원경(항공사진)

 내전지는 가운데 마루와 좌우온돌방을 갖춘 28칸 규모이며, 그 중심축에는 어도와 대문, 외전지로 내려가는 계단이 좌우행각으로 둘러싸여 중심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 중심건물들은 그 재료와 축조방법에서 당시 성숙한 건축기술을 보여주고 있으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설한 구들이 남아있어 흥미롭다.

   
▲ (사진제공:경기문화재단)북한행궁 내전영역 전경

 또한 중심영역을 둘러싸는 배수로 처리와 후면 화계, 내전 영역의 경계를 이루는 내ㆍ외곽담장지는 궁궐의 내전에 걸맞는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북한산 내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립공원 내에 위치하여 후대에 훼손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에, 1915년 전후 수해로 붕괴되었을 당시의 그대로의 모습으로 발굴되었다.

   
▲ (사진제공:경기문화재단)내전지 우상방 구들

 한마디로 역대 발굴된 행궁지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발굴 결과는 조선시대 행궁 건물지 복원을 기준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 조선후기 건물지의 난방과 배수시설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실증자료를 보여준다는 점, 현실적으로는 북한산성 행궁의 원형 복원을 가능케 해 준다는 점 등에서 큰 학술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 (사진제공:경기문화재단)토수(내전지 출토)

 한편, 내전 영역의 동쪽 부분은 1915년 7월 산사태로 동쪽 골짜기에서 급작스럽게 불어낸 물길로 인해 훼손되었음이 이번 발굴로 밝혀졌다. 그리고 바로 그 매몰지에서  상당수의 건축석재, 용문ㆍ봉황문ㆍ수자문ㆍ거미문ㆍ화문 등의 막새기와, 치미‧용두‧ 잡상 등의 기와편, ‘己巳’ㆍ‘辛訓’명 수키와, 여러 건축부재로 사용된 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이런 유물들 역시 향후 북한산성 행궁 복원을 위한 귀중한 고증자료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렇듯 북한행궁 1차 발굴조사로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행궁 내전영역의 공간구성과 규모, 축조방법 뿐만 아니라, 건축부재에 대한 실물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향후 연차적으로 진행되는 외전지와 부속시설에 대한 발굴이 마무리되면, 북한산성 행궁 복원을 위한 학술적 자료가 충분히 확보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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