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al Spirit Exhibition ( 충무아트홀 10/24~30 ) 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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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al Spirit Exhibition ( 충무아트홀 10/24~30 ) 에 부쳐
  • 김형수 기자
  • 승인 2013.10.19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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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정신주의 창시자 오준원 화백

 

   
▲ (사진제공:오준원)자연주의 창시자 오준원 화백
늘상  해오던 일상에서 벗어나  일탈을 하려고  나는 9월 말 쯤에 도로가 나를 반기는 대로 따라 갔다. 속도감 있는 도로를 빠져나가고, 다섯시간 후에, 남해안에 이르렀다. 햇빛에 설레임 머금은 듯 수줍은 미소의 모습을 가진 끊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얼굴에 부딪히고 부벼대는 모습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듯 보였다. 

 눈부신 바다를  상상으로 형상화 시켜 보곤 했었는데 실제로 살아가는 생명들의 소리가 그들 여기 저기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자연은 그랬다. 나는 그러한 존재의 유희에 언제나 곁에 있었다.

 노래하는 물상들. 유여의 즐거움을... 자연은 그저 그대로이면서 멋지고 아름다우며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 뿐이다. 사람은 욕심을 부리고, 권력이나 돈 명예를 차지하려고 하지만,  자연은 자신의 에너지를 그대로 수용하며 포용하고 있었다.

 어쩔수 없다는 표현도 필요 없으며 아무리 물상들의 소용돌이도 용인이나 참견의 대상이 아닌 것 같았다. 인간종으로 아무리 연구하고 과학적으로 탐구한다해도 자연의 실체는 언제까지나 미완의 탐구일 것이다. 그러나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완전을 말하기보다는 미완을 얘기하며 불완전을  찬양해야 할 것이다. 은파가 내눈에 부딪히는 순간 나는 피부가 축소되고, 순간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크게 떳던 눈은 가늘게 감겨졌다. 푸른 바다에 점점히 널려있는 섬이 있는 바다풍경, 자연의 장 위에 아무 거부없이,  수용되어지는 부분이다. 이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다니 자연의 에너지 앞에서 고개가 숙연해진다 . 여기서 인위적인것에 의해서 방해받았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자연안에서 자연에 의한 순간제어되어진 그 현상에는 조금도 거부감 없이 민감함이 수반되지 않았었다. 그냥 그렇게 받아들일 뿐이다.

 모든 물상이 자연의 부속물이지만,  큰 우주의 질서에는 , 조용히 순응하는 것 같았다. 위대한 법규 , 질서의 오묘한 진리앞에, 의식하는 종들은 절로 고개를 수그릴 수 밖에 없는게 아닌가?  진행방향 오른쪽에는  산자락을 이루어, 산골처녀의 치맛자락을 두르고 있는 것 같은 정감있는 산이 자리했다. 비탈진 수수밭에는 고추 잠자리 노래부르며, 그들의 언어로 세상을 찬미하고 마치 사람을 , 나를 부르는듯 그리고 우롱하듯 알 수 없는 언어로... 나는 행복했고 , 기분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언덕위에 전에는 밭이 있었을 것 같은 터에 까페를 지어서 제법 도시 교외에서나 보았던, 건물안은 연륜이 배어있는 중년말의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음료 주문을 위한 고운 음성이 떨어지고 나는 메밀차를 좋아한다고 했다. 큰 유리창 아래 펼쳐진 바다는 내 마음을 그리고 육신을 움츠리게 했다. 물 밑으로는 수많은 고기들이 노닐것이고 , 이름 모를 바다 생물들을 바다는 수용하고 있었다. 좋은 것 , 나쁜 것 없이 그냥 그대로 행복의 수치를 얘기할 수 없는 괜찮은 바다세상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때  새 한 마리가 유리창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나는 이게 뭐지? 하면서 잠시 멍하니 있었다. 나는 순간 긴장하고 , 그건 이름모를 새가 날아가면서 새의 똥 미사일을 발사했던 것이었다. 그랬다.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새가 날아가면서 대각선으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유리창 밖이니 이물감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느슨해진 심상이 보다 그리고 적당히 일상의 의식으로 복원되어지고 있었다.

 메밀차가 나오고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혼자 오셨냐고 ... 나는 ‘네’ 외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즐기는 공간과 시간들이 뭉개짐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말을 안하자 아주머니는 자신의 자리로 가고 다시 창 밖을 향해 펼쳐지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가까이 옆 밭에는  언제오셨는지 할아버지 한분이 밭에 오셔서 까페에 오는 길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수수 한 그루를 바르게 세우고 계셨다 .그 수수는 울타리 기둥에 묶어 두어 제법 멋지게 자기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었다.

 저 할아버지의 구부정한 허리는 세월의 흔적이겠지, 가정을 일구고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들를 가르치느라 세상의 무게까지 짊어지면서 버겹게 오늘을 걸어왔으니 등인들 살점인들 마음인들 성한데가 있으시랴. 할아버지는 혼자 가만히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아들 딸이 잘해주어서 그저 마음의 행복과 감사? 아니면 속 아프게 하는 자식들 때문에 마음이 괴롭고 아프실까? 세상 산다는게  그래도 대단한 것인데, 언젠가는 가야하는 생 ,,, 자연으로 돌아가는 우리인데 왜 이리도 만상이 때로는 뒤엉키는 걸까?

 할아버지는 이런 저런 상념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밭에는 풀 한포기 없는 것 같고, 할아버지는 꼭 할 일도 없었음인지 수수하나 세우시고 밭을 한바퀴 천천히 둘러보시더니 양팔을 뒤 허리에 얹고 조심스레 발길을 옮기셨다. 살아있는 뭇 생명체나 사람들 우리 모두는 할아버지 , 할머니가 될 것이다. 지금 바다를 바라보고 세상을 음미하는 나도 예외일 수는 없으며. ...압력은 누르고, 파랑은 깎는구나... 세월은 압력과 파랑을 동반하면서 탄생과 소멸을 무한히 변화시키고 있었다.

 실로 위대한 자연운동의 실체이다. 바다는 아마도 거대한 산실 . 영원한 생명을 진정 으로 바라고 있을 것이다. 절로 경외감이 우러나온다. 아름다운 대자연! 위대한 당신은 모든 것을 품었다. 그리고 사랑과 봉사만을 하고 있었다. 싫다는 말은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당신의 가슴은 너무 넓어서 자로 잴 수도 없지 않는가? 

 까페에서 나오기전 바다쪽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태양을 가려 은파는 사라지고 시커먼 바다와 섬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온갖 생각과 아름다움으로 저들은 실로 감동 그대로였다. 낮에는 파도의 노래소리와 부서지는 물결의 신비함에 이끌리어 놀다가, 밤에는 달빛에 반사되어 가녀린 여인의 모습으로 바다와 포옹할테고, 그렇겠지! 언제나 좋은 날 그냥 한없이 무한히 행복하겠지.

 나는 해안길을 낮은 속도로 유지하며 자연을 사랑하고 탐닉하면서 존재되어진 나로서,  나의 예술을 생각해본다. 영혼과 영원으로가는 자연정신주의 예술을 해오면서 선의 최상위인 진선미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고자 걸어오고, 걸어가는 자연의 길에서 사랑과 평화와 행복을 심는 예술을 하고 있다.

 맑고 밝고 깨끗함을 가치로 삼으면서 말이다. 그랬다. 사유의 깨달음, 성찰의 자리에서 세상을 본다. 진정 아름다움을 말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자연 그대로인 것을.” 이는 곧 자연정신주의가 나의 삶이요 길이며 나의 예술이다. 이 예술은 미술 뿐만이 아니고 지구촌 사회 전반에 트렌드화 될 것이다.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세상, 마음이 서로에게 전이 되며, 서로가 이익이되고 서로가 존중하며 조화로움의 세계를 말이다. 세상은 물질의 가치를 우위에 둔 삶이라면 우리의 존재이유는 상실된다. 겉잡을수 없는 중심이 없는 사회상이 될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이해하고 진정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이해해야한다.

 그리고 좋은 점을 실행에 옮겨 실천적인 습관의 생활화 패턴으로 지속되어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사랑과 평화와 행복으로 이어지며, 다툼 없는 삶의질이 향상되는 세상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21세기는 품격있는 문화의 세기이다.

 이세기에 존재하는 인간은 가장 문화적이면서 제일 위험한 존재일 수도 있다. 비젼있는 삶 , 앞을 읽어가는 생으로 향상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행복의 수치나 질 좋은 삶을 우리가 만들고 , 스스로가 건설해가야한다. 누군가가 해주는 방향으로 설정되어져서는 안되며, 세상은 절대 누구의 탓이 아니다. 자신을 스스로가 책임질수 있어야 하며 내일의 희망에 씨앗을 오늘 심어야 한다. 미루면 의미는 약해진다, 의식이 낮은 분을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고, 이해를 하도록 유도해야한다.

 인간세상은  농사와 같다. 인류가 존재하는 세상안에는, 영농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도시와 시골이 융합되고 과학과 농업이 융합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곧 생존의 법칙이다. 식생활 자체가 삶이기 때문이다. 인간 정신의 향상이  세상이 발전되면 될수록, 문화의 비중은 커져만 갈 것이다. 음식이건 과학이건 예술이건 여기 최상위에는 문화가 숨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창작과 다양한 색채의 테크닉을 연구하면서 인간의 행복에 많은 시간을 투영시켜 왔다. 살아있는 모습뿐 아니라 자연을 표현해 왔다.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래에서 나타난다.

 그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을 잘 수행하면, 존재감이 극대화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명망이라는 것도 이 연장의 발로이다. 쉼없이 일했던 그 자리는 아름다울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세상안 인간모두가 주인공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누구의 나라가 아니고 바로 당신의 나라다. 모든 물상들이 포괄적으로 포함된다.당신이 주인인 나라, 한없이 사랑해야한다. 그리고 너와 내가 함께 손잡고 미소 머금으며 걸어가는 대 자연속의 우리의 세상. 그 세상을 사랑한다.

 그 길은 자연정신주의 길이며 우리 모두가 걸어가야할 아름다운 길이다.

 햇살 품은 이슬 방울이 아무리 영롱하다고해도 우리모두 손잡고 가는길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이 아름다움을 위해 손에 손잡고 함께 가보심이 좋지 않은가?

                                            이 아름다운 세상안에서 
                                   자연정신주의 창시자 오준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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