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충북 역사문화인물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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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충북 역사문화인물 선정
  • 정유철 기자
  • 승인 2014.04.1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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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발전연구원(원장 정낙형) 부설 충북학연구소에서는 그동안 매년 ‘충북 역사문화인물’을 선정하여 그들을 소개하는 책자를 발간하는 가운데, 지난 4월 8일 '2014 충북 역사문화인물 선정위원회'를 개최하고 충북 역사문화인물 7인을 선정했다.

 선정위원은 김현길(한국교통대 명예교수), 강태재(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 상임고문), 박영수(전 충북문화원연합회장), 신영우(충북대 교수), 나운환(청주KBS 편성국장), 조혁연(충북일보 대기자), 김선호(충청북도 문화예술과장), 김양식(충북학연구소장) 등이다. 이번 선정은 충북을 빛낸 역사문화인물 중 2014년도에 100주기, 200주기 등에 해당하는 인물, 특별히 재조명하거나 선양할 필요성이 있는 인물, 새롭게 발굴해야 할 인물, 시·군/충북학연구소 등의 추천 인물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선정된 인물은 임창순, 최시형, 권섭, 안숙, 최양업, 김정, 서상렬 등 모두 7인이며 이들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임창순(任昌淳, 1914~1999)은 현대 학학자이며, 금석학자, 서예가, 역사학이다. 1914년 옥천군 청산면 법화리에서 태어났다.

  1927년부터 6년간 보은의 관성정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중등교원을 거쳐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4․19 당시 시국에 관여하여 교수 데모를 이끌었으며, 1964년에는 ‘인민혁명단’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한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문화재위원, 문화재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금석문을 활용하여 우리 역사를 해석하고 역사적인 사실을 밝히고자 하였다. 우리나라 한문교육의 산실로 불리는 ‘태동고전연구소’를 설립하고, 문화관광부 제1호 청명문화재단을 설립하였다.

 보관문화훈장(1976)을 받았으며, 2010년 4․19혁명 당시 교수시위를 주도한 혁명유공자로 선정돼 건국포장을 받았다. 옥천 지역 출신으로 2014년 탄신 100주년이다. 최시형(崔時亨, 1827(순조 27)∼1898)은 동학의 제2대 교주이다. 1881년 단양에 경전간행소를 마련하여 󰡔용담유사(龍潭遺詞)󰡕를 간행하고, 1885년 충청도 보은군 장내리로 본거지를 옮겼다.

 1892년부터는 교조의 신원(伸寃)을 명분으로 한 합법적 투쟁을 전개하여 나갔다. 1893년 3월 10일 보은의 장내리에 수만 명의 신도를 집결시켜 대규모 시위를 감행하였다. 1894년 4월 충북 옥천 청산(靑山)에 신도들을 집결하였다. 옥천에는 문바위골(최시형 기포령지) 유적이 있다. 2014년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이하여 충북 역사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권섭(權燮, 1671(현종 12)∼1759(영조 35))은 조선 후기 문인, 시인이다. 일생을 전국 방방곡곡 명승지를 찾아 탐승(探勝) 여행을 하며 보고 겪은 바를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킨 문인. 한시 3,000여 수, 시조 75수, 가사 2편 등을 남겼다.

 시기적으로 정철(鄭澈)·박인로(朴仁老)·윤선도(尹善道)의 시의 주맥(主脈)을 이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저서로는 간행본 '옥소집(玉所集)(13권 7책)'과 필사본 '옥소고(玉所稿)'가 있다. 그이 묘소는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옥소산에 위치하고 있다. 권섭의 작품은 양적인 비중도 크지만 근대 여명기를 내다보는 시점에서 주제, 소재, 시어, 기법 등 여러면에서 전위적인 면을 보여준 점, 국문학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어 충북의 역사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안숙(安潚, 1863(철종 14)~1910(순종 4))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에서 출생한 순국지사이다. 1894년 식년시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동도서기의 실학파 문인이자 개화사상가이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를 당하자 민족적 울분을 참지 못하여 1910년 10월 4일 괴산의 오랑강에 투신하여 순국하였다.

 저서로는 '위당유고'가 있으며, 1995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그동안 선양이 미흡했던 괴산의 역사적 인물이다. 최양업(崔良業, 1821-1861)은 천주교 선교자로, 한국 천주교 첫 번째 신학생 및 유학생이며, 한국의 두 번째 신부이다.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배티 신학교 겸 성당, 사제관에 거주하며 사목활동을 하였으며 1861년 진천 배티교우촌에서 선종하였다.

  현재 진천 배티성지 신학교는 도기념물 15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2014년 4월 재티성지에 최양업 신부 박물관 개관한다. 김정(金淨, 1486(성종 17)~1521(중종 16))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학자로, 본관 경주(慶州), 호 충암(冲菴)이다.

 보은군 보은읍 성족리 출생하여 1504년 사마시 합격, 이조정랑, 순창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758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중종 비인 폐비신씨 복위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보은 상현서원, 청주 신항서원, 순창 화산서원, 제주 귤림서원 등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 '충암집', '제주풍토록' 등이 있다.

 관련유적으로 보은 상현서원(도기념물 43호), 김정유허비(도문화재자료 80호)이 있다. 보은출신의 대표적인 문신이자 학자로 학문적, 정치적 업적이 뛰어난 인물이다. 서상렬(徐相烈, 1854(철종 5)~1896)은 의병, 독립운동가로, 을미의병 당시 제천 외각, 특히 영남지방에 제천의병의 이름을 크게 알린 인물이다. 단발령이후 의병이 일어나자 최초 승리였던 장회전투를 지휘하였으며, 유인석의 명령을 받아 영남 소토사, 즉 영남지역에서 병력을 모으면서 왜적을 토벌하는 책임을 맡아 활동하면서 의병반대 지방관을 처단하였다.

  또한 영남 일곱 고을의 의병을 연합하며 활약하였다. 낭천(지금의 화천)에서 전사하였다. 현재 묘지가 제천 구곡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의병장으로 제천지역 대표 의병이다. 충북학연구소에서는 앞으로 선정된 7인의 생애와 업적을 집중 조명한 '2014 충북 역사문화인물'을 발간할 계획이며, 또한 이들에 대한 학술회의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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