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산에 올라 - 서울 강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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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산에 올라 - 서울 강서구
  • 송영기 기자
  • 승인 2021.12.28 0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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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글로벌뉴스통신]

 

 

(포근한 날씨 안개낀 초겨울 서울 강서구 개화산 전망대에서)
(포근한 날씨 안개낀 초겨울 서울 강서구 개화산 전망대에서)

 

 

            개화산(開花山) 

                          송 영 기

 

개화산 둘레길이 사방으로 펼쳐 있어

암닭이 알을 품듯 많은 사람 찿아 들고

삼각산 행주산성이 행호(杏湖)너머 보이네

 

안개 낀 겨울 아침 길 물어 올라 서자

울창한 나목(裸木) 숲속 이름 난 암자 하나

청명한 목탁 소리가 운무 속을 뚫고 오네

 

그 옛날 고기잡이 강변에서 구경하고

한가히 바람 쒜며 바라본 뒷산에는

온갖새 바쁘게 날고 꽃은 피어 흥 더했지

 

 

(개화산에 있는 약사사 절 대웅전 청기와 지붕이 뒤에서 바라 보인다)
(개화산에 있는 약사사 절 대웅전 청기와 지붕이 뒤에서 바라 보인다)

 

 

(註) 행호(幸湖, 杏湖) : 개화산에서 굽어 보는 행주산성 아래 흐르는 한강을 행호라 불렀다.

    겸재 정선의 화제에 행호관어(杏湖觀漁)가 있고, 그의 평생지기 사천 이병연(傞川 李秉淵)의 시에도 나온다.

 

         늦봄이니 복어국이요

         초여름이니 웅어회라

         복사꽃 가득 떠내려오면 

         어망을 행호(杏湖)밖에서 잃겠구나

 

 

(겸재 정선이 그린  개화산에 있는 '개화사' 그림 - 간송미술관 소장)
(겸재 정선이 그린 개화산에 있는 '개화사' 그림 - 간송미술관 소장)

 

 

     암자 : 양천현령을 지내며 진경산수를 그린

           겸재 정선의 한강 풍경화 2 화폭에

           개화산 개화사(開花寺)가 있는 데,

           겸재 이후 약사암으로 불렸다가

           지금은 약사사(藥師寺)로 불리며

           고려시대 미륵불 입상이 대웅전 중앙

           석가모니불 뒤에 주불처럼 서 계신다

       

     개화산 : 꽃이 핀다는 의미의 개화산은 겸재

            당시에는 주룡산(駐龍山)으로 불렸으며,

            한강과 행주산성을 앞에 두고 있는

            산이며, 아래는 행주대교, 강 건너 멀리

            삼각산도 보인다.

            예전엔 경기좌도 양천현에 속했고,겸재

            가 현령 벼슬을 할때의 관할지역이고,

            지금은 서울 강서구의 진산(鎭山) 이다.

 

 

(겸재 정선의 또 다른 개화산 '개화사' 그림  - 김충현 소장)
(겸재 정선의 또 다른 개화산 '개화사' 그림  - 김충현 소장)

 

 

      송상국(宋相國) : 송인명(宋寅明1689 - 1746

            礪山人)이 일찌기 개화사 산방에서 공부

            하여 귀하게 되어 영조 때 좌의정이 되자

            절을 중수하고 불향답(佛香畓)을 사서

            시주하였다.

            어릴적 가난할 때  역시 가난한 절이었던

            개화사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독서해

            생원시와 31세에 문과 대과에 급제했다.

            

(해발 128 M의 높지 않고 가파르지 않은 완만한 개화산 정상 비석 앞에서)
(해발 128 M의 높지 않고 가파르지 않은 완만한 개화산 정상 비석 앞에서)

 

 

            그리고 그 때 공부하다 나와 보는 근방의

            수려한 경관을 못잊어 훗날 맞은편 행주에

            장밀헌(藏密軒)이란 큰 별서를 지었으며,

            겸재 정선은 장밀헌 송인명과 친분이 두터

            웠다고 한다.

            겸재는 이름있는 분들의 별장이 있는 경치

            좋은 한강변을 따라 그 풍광을 즐겨 화폭에

            담았으니,한강 일대 진경 33곳이나 된다

           (참고서적 : 최완수 지음, 겸재의 한양진경)

 

(요즈음은 약사사라 불리지만, 겸재 정선이 이곳 양천현령을 할때는 산 이름도 주룡산 절 이름은 개화사였다. 그 이후 개화산 약사암, 약사사로 불리었으며, 여산 송씨 송인명이 여기서 공부 할때는 가난한 절이었는 데, 과거에 급제하고 영조 때 좌의정이 되어 왕명으로 탕평책을 실시 할무렵 실세가 되어, 어려운 시절 돌봐준 절에 보은의 뜻으로 시주를 많이 하여 큰절이 되었다고 한다)
(요즈음은 약사사라 불리지만, 겸재 정선이 이곳 양천현령을 할때는 산 이름도 주룡산 절 이름은 개화사였다. 그 이후 개화산 약사암, 약사사로 불리었으며, 여산 송씨 송인명이 여기서 공부 할때는 가난한 절이었는 데, 과거에 급제하고 영조 때 좌의정이 되어 왕명으로 탕평책을 실시 할무렵 실세가 되어, 어려운 시절 돌봐준 절에 보은의 뜻으로 시주를 많이 하여 큰절이 되었다고 한다)

 

 

(개화산 아래 한강너머 행주에 송상국 인명의 으리으리한 별서 장밀헌이있었다한다. 아마 개화사를 중수 할때쯤 지었을 것이라고, '관송미술관 주지' 최완수 님의 책 '겸재의 한양진경'에서 읽었다)
(개화산 아래 한강너머 행주에 송상국 인명의 으리으리한 별서 장밀헌이있었다한다. 아마 개화사를 중수 할때쯤 지었을 것이라고, '관송미술관 주지' 최완수 님의 책 '겸재의 한양진경'에서 읽었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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