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편찬원, 근현대 서울 속 ‘주변인’의 삶과 관계성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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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편찬원, 근현대 서울 속 ‘주변인’의 삶과 관계성 발간
  • 안청헌 기자
  • 승인 2023.05.06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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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글로벌뉴스통신]서울역사편찬원(원장 이상배)은 서울역사중점연구 제14권 ≪근현대 서울 속 ‘주변인’의 삶과 관계성≫을 발간하였다. 이번 연구집에 수록된 6편의 연구 논문은 개항 이래 서울에 살면서 ‘주변인’으로 분리되었던 사회적 약사들의 역사를 조명했다. 

(사진제공: 서울역사편찬원)≪근현대 서울 속 ’주변인’의 삶과 관계성≫ 표지 사진
(사진제공: 서울역사편찬원)≪근현대 서울 속 ’주변인’의 삶과 관계성≫ 표지 사진

서울역사편찬원은 서울의 역사 중 아직 개척되지 않았거나 취약한 분야의 연구를 장려하기 위해 2016년부터 <서울역사중점연구> 시리즈를 기획하여 편찬하고 있다. 신진연구자를 육성하고 ‘서울 역사 전문가’의 저변을 꾸준히 확대하기 위함이다.

먼저 김헌주(한밭대 교수)의 〈근대전환기 서울의 근대적 변화와 주변인들의 소외〉에서는 개항 전후 시기 한성의 ‘주변인’들을 살펴보았다.

19세기 말~20세기 초 경제적 변화와 반복되는 재해, 외국인의 유입 등으로 서울에는 많은 유랑민과 빈민이 생겼다. 성균관에 소속되어 소고기 장사나 전통연희에 종사하던 ‘반인(泮人)’, 경강 일대에 사는 ‘강민(江民)’, 경기 지역에 유리걸식하다가 떼를 지어 서울에 출몰하는 ‘화적’은 조선 후기 이래 서울에 존재했던 ‘주변인’이었다.

한편 서울에 외국인이 유입되고 철도 부설·도시개조사업 등 근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소외되는 주변인들은 전차에 돌을 던지는 등 외국인에 대한 적개심을 표출하며 자신을 주변화하는 근대화에 저항하기도 하였다. 

두 번째 논문인 김정인(춘천교육대 교수)의 〈20세기 전반 경성ㆍ서울의 부랑 나환자 출현과 정치ㆍ사회적 대응〉에서는 일제강점기 경성에 부랑 나환자들이 출현하면서 문제가 대두하게 된 배경과 그 대응을 해방 이후까지 함께 다루었다.

서울은 수도였기에 나환자들이 수용과 치료를 기대하고 모여들며 부랑하던 도시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소록도자혜의원 설립과 <조선나예방령> 공포 등을 통하여 나환자들을 강제격리 대상으로 규정함으로써, 나환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에 기반한 배제 논리를 내면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제강점기 이래로 나환자들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려는 도시민의 압력은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어, 나환자촌에 있는 나환자들은 수용소로 이전·격리되었다. 수용의 혜택에 배반을 느낀 나환자들은 도주함으로써 다시 도시의 부랑 나환자가 되었다.

세 번째로 이명학(한국교원대 연구원)의 〈일제강점기 경성의 철거반대운동과 불량주택 주민의 정치문화〉에서는 일제강점기 불량주택 주민들이 주도한 집단행동인 철거반대운동을 분석하였다. 

일제강점기 경성에는 판잣집이라 불리는 불량주택이 급증하였고, 개발에 따른 불량주택 철거가 이루어지자 그곳에 살던 주민들은 철거를 막으며 적극적으로 저항하였다. 경성에서는 1923년부터 1941년까지 2만 5,000여 명이 50여 건이 넘는 철거반대운동에 나섰고, 지역적으로는 불량주택이 밀집한 동부지역에서 가장 활발했다. 

불량주택에 살고 있던 빈민들은 자유로운 토론과 의사결정이 가능한 공론장을 마련하여 함께 대항하였고, 지주의 퇴거명령을 무시하거나 혹은 행정당국에 자신들의 처지와 자활 의지를 담은 진정서 제출 등을 통하여 자신들의 주체성을 표출하였다.

네 번째로 소현숙(동아대 교수)의 〈해방 이후~1970년대 서울 지역 농인의 삶과 ‘농 공동체’〉에서는 서울 지역 중심의 농인 생활 실태와 농인 공동체의 형성 과정을 다루었다.

농인은 해방 이후 법적 위상이 변화하였음에도, 1970년대 후반까지 농인에 대한 사회복지 정책이 마련되지 않아 장애인으로 냉대와 차별을 경험해야 했다. 특히 이들에 대한 교육은 서울농아학교를 제외하고는 민간인들의 자선사업에 의지하고 있었다. 

농인들의 개별적인 결집과 집단문화는 1946년 조선농아협회 및 서울 영락교회 농아전도부 창립을 시작으로, 1970년대를 거치며 농학교, 농인교회, 농인단체와 구락부 등 다양한 공동체로 확대되었다. 이들 공동체는 정치적 의견을 결집하기도 하고 집단작업장과 같이 사회적 차별 속에 취업과 자활의 기회를 모색하는 장이 되었다.

다섯 번째로 금보운(영남대 연구교수)의 〈해방 이후 서울 지역 ‘기지촌’과 ‘미군 위안부’의 변화〉에서는 서울의 미군기지 인근에 형성된 기지촌에서 주로 미군을 상대했던 여성 ‘위안부’의 지위변화를 살펴보았다.

이태원에 기지촌이 들어선 것은 1958년 무렵으로 이후 이태원과 미군이 주둔하던 영등포에 ‘미군 위안부’들이 주로 거주하였다. 하지만 1970년대 미군이 감축되고 영등포 미군기지가 폐쇄되고, 국제화 과정에서 1997년 이태원이 서울시의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성매매 업종은 점차 사라졌다.

‘미군 위안부’를 집단화해 ‘일반인’과 분리할 목적으로 서울 내에는 자치회들이 결성되었고, 이들이 출산한 혼혈아는 별도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등 사회적으로 배제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미군의 폭력에 집단으로 항의하는 등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으며, 1970년대 이후 향토예비군에 배치되는 등 점차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편입되어 나갔다. 

마지막으로 조수룡(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의 〈북한이탈주민의 서울 정착과 ‘더불어 살기’〉에서는 남북분단의 현실이 낳은 ‘주변인’인 북한이탈주민의 서울 정착과 적응의 역사를 다루었다.

2021년 기준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만 15세 이상 북한이탈주민은 약 3만 명으로, 이 가운데 약 24%에 달하는 7,000여 명이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양천구ㆍ노원구ㆍ강서구 등에 집중되어 살고 있고, 비경제활동 인구비율과 실업 비율이 전국 평균을 웃돌며 월평균 임금은 전국 평균에 못미친다. 

1960년대에서 1990년대 초까지 이들은 남한의 체제 선전의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나, 1990년대 이후 보호와 복지의 대상으로 그 시선이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남한사회에서 더불어 살기 위한 법적ㆍ경제적ㆍ문화적 조치들이 요구되고 있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서울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다양한 층위의 ‘주변인’들이 함께 존재하고 있는 만큼, 서울 속 약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동행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라며 “앞으로도 더 좋은 <서울역사중점연구> 시리즈를 발간하도록 많은 연구자와 시민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근현대 서울 속 ‘주변인’의 삶과 관계성≫의 가격은 1만 원이다. 시민청 지하 1층 서울책방과 온라인책방(https://store.seoul.go.kr)을 통해서 구매할 수 있다.  또한 ≪근현대 서울 속 ‘주변인’의 삶과 관계성≫을 비롯한 <서울역사중점연구> 시리즈는 서울 소재 공공도서관과 서울역사편찬원 누리집(https://history.seoul.go.kr)에서 제공하는 전자책으로도 열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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