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의 독립운동가 박인호 선생 전시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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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의 독립운동가 박인호 선생 전시회 개최
  • 오병두 기자
  • 승인 2015.03.0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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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글로벌뉴스통신 오병두기자]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박인호 선생을 2015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오는 3월 31일까지 독립기념관 야외특별기획전시장에서 개최하고 있다. 
 
 박인호 선생은 1855년 2월 1일 충남 덕산군(德山郡) 장촌면(場村面) 막동리(幕洞里)에서 박명구(朴明九)와 온양 방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83년 동학에 입교한 선생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덕산 등지에서 농민군을 이끌었다. 1908년에는 천도교 제4대 대도주(大道主)로 임명되어 지방교구 설치 등 천도교단의 정비에 힘쓰는 한편, 재정운영상 어려움을 겪어 천도교단이 인수한 동덕여자의숙(同德女子義塾)․보성학교(普成學校) 등을 운영했다.

 1919년 3·1운동이 준비되는 가운데 선생은 천도교의 대표자로서 전국의 천도교 대교구에 등사 인쇄기 배치를 지시하여 독립선언서와 격고문(檄告文) 제작을 지원하였다. 또한 천도교 대교당 건축 명목 등으로 성금을 거두어 3·1운동자금으로 제공하고, 독립선언의 전말을 작성한 『조선독립신문』을 발간하여 3·1운동 소식을 널리 알리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3·1운동을 배후 지원하다 일경에 붙잡힌 선생은 1년 8개월 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감옥에서 나온 후에는 상하이(上海)와 베이징(北京)의 천도교 전교실(傳敎室)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운영자금을 제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선생의 후원으로 1926년 6․10만세운동과 1927년 신간회(新幹會)의 결성과 활동에 천도교 출신 청년과 교인의 활발한 참여가 가능할 수 있었다. 1936년에는 일제 패망을 재촉하는 ‘멸왜기도(滅倭祈禱)’를 교단을 통해 지시했던 선생은 1940년 4월 자택에서 서거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이와 관련해 독립기념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코너를 마련하고 관련 자료를 3월 한 달 동안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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