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격포 속에서 소대원 중 저만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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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격포 속에서 소대원 중 저만 살았습니다
  • 권혁중 기자
  • 승인 2013.06.05 2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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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입구 계곡에서 내 옆에서 외삼촌과 7명의 소대원이 날아온 박격포탄에 죽었습니다. 위험하니까 자기를 따라오라며 항상 챙기던 분이었는데....”

6.25 참전용사 조기한 씨(82)는 그 때를 회상하다 결국 말을 잇지 못했다. 벌써 6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모든게 어제 일 같다.

“해마다 6월이 되면 월정사 입구로 갑니다. 많이 변했지만 그 곳에 가면 외삼촌과 전우를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 흥남부두에서 자원입대
함경남도 북청 출신의 조기한 씨는 6.25전쟁 당시 ‘1.4후퇴’의 무대였던 흥남부두에서 국군으로 자원 입대했다. 당시의 나이는 만 18세. 규정상 만 20세가 넘어야 입대할 수 있었지만 당시 남들보다 덩치가 컸던 조 씨는 쉽게 입대할 수 있었다.

“북청에서 어린 시절 살면서 해방 이후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지주였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고, 저희는 소나무 껍질을 벗겨 끓여 먹는 등 많은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나고 흥남부두에서 후퇴를 하면서 ‘내가 인민군은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 꼭 국군으로 들어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조 씨가 입대 후 훈련을 받은 곳은 강원도 묵호, 지금의 묵호초등학교 자리였다. 20일 동안 진행한 훈련에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배고픔이었다. 한 끼 식사는 소금물을 약간 넣은 계란만한 주먹밥이었다. 10대의 청년이 힘든 군사훈련을 하면서 이걸로 버티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훈련을 마치고 조 씨는 자대배치를 받았다. 남보다 체격조건이 좋았던 그는 함께 훈련을 받았던 1500여 명 훈련생 중 전방으로 배치하는 40명에 들어갔다. 부대는 수도사단 기계화연대 2대대 수색대였다. 그가 맡은 임무는 수색정찰. 본대보다 먼저 가서 위험이 있는지를 수색하는 역할이다. 그는 함께 입대한 외삼촌과 배치 받았다.

“첫 전투는 정선군 임계면에서 벌어졌습니다. 자대에 배치받고 나서야 총을 처음 만졌으니까 얼마나 정신없었겠습니까. M1소총에 탄알 장전을 못 해 쩔쩔맸습니다.”

다행히 그는 첫 전투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다. 조 씨는 부대원과 함께 대관령을 넘어 진부면 소재지로 이동했다. 때는 3월 초. 당시 조 씨가 속해 있던 연대는 월정사 입구에서 적의 매복에 걸려 적의 1개 사단에게 포위당하게 되었다.

▶ 월정사 계곡에서 외삼촌 잃어
“날짜도 기억납니다. 1951년 3월 3일. 월정사 계곡을 따라가면서 부대가 후퇴를 하는 중양 옆의 산 위에서 인민군들이 박격포를 쏘아댔습니다. 전 외삼촌과 부대원들과 함께 후퇴하던 중이었지요. 그 때 우리 소대 사이로 박격포가 떨어진 겁니다. 저 혼자만 무사했고 다른 모든 소대원 7명이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 날 조 씨가 속한 연대는 전체 병력 2100여 명 중의 3분의 2인 1400여 명을 를 잃는 피해를 입었다. 조 씨는 이 때를 설명하면서 자기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던 외삼촌과 소대원들을 떠올리고는 결국 눈시울을 적셨다.

“그리고 전 향로봉으로 이동했습니다. 향로봉을 사수하는 것이 임무였지요. 수류탄에 부상당하기전 한 달 동안 죽을 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조 씨는 향로봉 정상에서 수색소대원들과 진지를 지키다 어깨에 수류탄 파편을 맞아 후송되어 1년 뒤 명예제대했다.

▶ 얼어죽은 피난민
“전쟁을 치르면서 가장 안타까운 기억은 대관령 정상입니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소재지로 가는 길이었지요. 한 피난민이 정상에서 짐 위에 앉아 아이를 안고 쉬고 있더군요. 그런데 가까이 가도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확인해 보니 이 사람은 대관령을 올라 쉬다가 아이와 함께 앉은 그대로로 얼어 죽어 있었습니다.”

조 씨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를 위해 이렇게 말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잘합니다. 똑똑하고 능력도 많습니다. 세계를 볼 줄 아는 시야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부탁할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이 나라를 지금껏 지키고 만들기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조금 더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조 씨는 6.25 참전의 공을 인정받아 화랑무공훈장에 추서되었다. 슬하에 아들 하나 딸 넷을 두었다. 지금은 대한노인회 원미구지회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오는 7월 18일은 6.25 참전 용사 대표로 미국 백악관과 UN본부를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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