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걸 유화전, '아름다움에 관하여'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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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걸 유화전, '아름다움에 관하여' 개최
  • 송영기 기자
  • 승인 2024.07.1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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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유화전 포스터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유화전 포스터

[서울=글로벌뉴스통신] 김호걸 유화展전 '아름다움에 관하여' 전시회가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예술공간 청람제'에서 2024. 7. 6 (토) - 7.27 (토). 관람시간 12 : 30 - 5 : 30 (월·금 휴관)으로 개최되고 있다.

김호걸 화백은 " 나는 내 멋대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자연이 나에게 시키는 대로 그린다. 자연이 나의 스승이다. 나는 자연이 나에게 보여주는 빛의 향연과 그 벅찬 감동의 리듬을 따라 파도를 타듯 캔버스 위에서 즐긴다."고 말했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예술의 공간 청람재 전시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예술의 공간 청람재 전시실

그리고 전시관 게시물에 의하면  " 이번 전시는 김호걸 화백의 유화 작품(1970년대 -2000년대)에서 기법 상의 변화를 조명한다. 마치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들처럼 느껴지는 시간별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차이는 유화(Oil painting) 재료를 연구하고 탐구하면서 물질로서 재료를 다루는 화가의 눈과 표현에 능숙함이 무르익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유화의 물질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 그리자이유 · 그레이징 · 까마이유 · 알라프리마기법등 유화를사용했던 서양의 마스터들의 고전적 기법들을 탐구해 왔고, 또한 자신의 관점과 리듬으로 재해석하는 데 성공했다.  72년작 '순이'는 가족을 그린 그림이고, 82년작 '독서'는 제자가 모델이 되어준 작품이다. 80년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무희들은 실제 국립발레단 단원들이었다. 그들은 건강함과 아름다움에 전문성까지 갖춘 인재들이었다. 당시의 그들이 보여준 예술에 대한 헌신적 봉사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김호걸 作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김호걸 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학과를 졸업(1957년)한 1934년 경북 영주 출생인 누드화가 김호걸(金虎杰) 화백의 관향이 선성 (宣城,예안 禮安고을의 옛 이름)인데, 조부 김원(金源) 한학자(漢學者)가 중국 당송팔대가인 삼소(三蘇) 소순, 소식(軾), 소철(轍)의 이름에서 따 백부 이름을 김식(金軾), 아버지 이름을 김철(金轍)이라 지었다. 그런데 화가의 이름은 갓 태어났을 때 호랑이가 물어 가지 말라고 범호(虎)자를 넣어 '호걸'이라 지었다고 한다. 수년전에는 호랑이가 집으로 들어 오는 태몽 때문이었다고도 했었는데, 이제는 나이도 들고 해서 그저 재미있게 말하는 것 같았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김호걸 作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김호걸 作

어려서 할아버지가 소학(小學)을 제쳐두고 손자에게 효경(孝經)을 가르쳐 주었으나, 지금은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신체와 머리털과 피부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므로 감히 헐거나 상하게 아니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라는 구절만 기억난다면서 몇번 되풀이 하였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김호걸 作 누드 · 89 x 130 cm · Oil on Canvas · 1987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김호걸 作 누드 · 89 x 130 cm · Oil on Canvas · 1987

그는 1980년대에 서울 강북구 수유동(현재 인수동) 삼각산 기슭으로 이사왔다. 이전에는 일찌기 효자동, 돈암동에 거주하였고,삼선중, 경동고,경복고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그때는 생활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경희대 상명대 동국대 서울대 (미술대)등 2~3 곳 대학에 시간강사로 나갈 때는, 대학 강사라고 이름만 좋았지 자녀를 학교도 못 보낼 정도로 코피 나게 고생했고, 밥먹기 힘들어 아사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대학은 과장 1명이 전임 교수이고  나머지는 전부 시간강사로 운영되는 형편이라서 생활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김호걸 作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김호걸 作

그는 굼뱅이가 천장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는것이 재주라면서, 왜정시대, 8.15, 6.25, 4.19, 5.16 등 나라에 여러 사건이 일어났지만 자기는 우직하게 한곳에서 오직 그림만 그리면서 여기까지 왔다. 중학교 때부터 미술을 시작해서 지금 90살이 되도록 딴 생각 하지 않고 오직 이것 그림 그리는 일 하나만 했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김호걸 作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김호걸 作

이제는 그림을 오래 보면 난 무섭다. 그저 산 좋다, 집 좋다. 석천(石川)이 좋다고 하면 그게 좋은것이다. 이 집(2024년 준공)은 미술관이 아니라 휴게실이라 생각한다. 서울이라 해도 이만한 곳이 없다. 그림만 보면 꼴도 보기 싫다. 그런데 지겹지도 않아서, 평생 그림만 그렸으니...그래서 그린 그림 중에는 70%, 80%, 99% 그리다 만것 (미완성)도 있다.
담배는 아직도 피우고 있으나 술은 못 마신다는 김호걸 노(老)화백은 화가 김소정 관장(작가의 딸.제자)에게 농인지 진담인지 거듭 술 가져오라, (손님과)함께 마시자고 말해서 편하게 해주었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김호걸 作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김호걸 作

그러면서 계속 이렇게 말했다. "그림은 화가의 마음을 그리는 것이다. 사진은 렌즈에 비추이는 것이지만, 그림은 화가가 그리고 싶은 것, 화가가 감동하는 것만 그린다. 리얼리즘으로 사진이 보여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다. 사진사의 마음이 안들어 갔다. 그러나 그림은 사람의 마음에 비친 영상, 화가의 마음이다. 그림은 그리는 사람의 마음이고, 마음을 그린다. 예술은 예술가의 마음을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솔직해야 한다. 그림은 어렵지만 재미가 있어 계속 그린다. 아니면 못 그린다."고 말했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김호걸 화가 자화상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김호걸 화가 자화상

작품(유화 그림)은 보통 1달이 소요된다. 그리다 말리고 그위에 덧칠을 해야 한다. (인물화. 누드화) 피부속에서 나오는 피부, 피도 흐르는 생명체다. 사람의 피부 속에는 피가 흐르지 않나.(피부를) 누르면 탄력과 체온이 있듯이 그림도 마찬가지다. 풍경은 햇볕에 하루 종일 변해서 10분도 그대로 않고 변한다. 그래서 힘들다. 사람은 돌맹이나 마네킹이 아니고, 속에 피가 흐르고 누르면 들어가고 만지면 체온이 느껴진다. (그림을 그리고 나서) 피부질감이 나왔다 해서 인쇄도 한다. 체온이 느껴지고 누르면 쏙 들어가는 탄력(감)도 있어야 한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1988년경 김호걸 화가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1988년경 김호걸 화가

그림의 배경도 그냥 그리면 공간감이 좀 부족한 극장 간판 그림일 뿐이다. 탄력과 체온 내딴에는 평생 했는데, 이렇게(이 정도) 밖에 아니되어 미안하다. 

직업모델은 10년 넘게 해온 사람으로 움직이지 않고 서 있어야 한다. 보통사람은 서 있으면 자빠진다. 1~2년 하다가 그만둔다.하루 3~5시간 그리면서 모델을 한달이상 써야 한다. 그러나 보통은 2~3일이다. 똑같은 자세로 몇시간씩 그리는 데, 10분~20분 휴식한다. 만약 10일간 3시간씩 오전과오후하면 직업모델도 힘든다. 첫날 자세를 10일, 15일, 1달 그 자세를 동일하게 취해야 한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1988년 12월 잠실롯데백화점 초대전 포스터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1988년 12월 잠실롯데백화점 초대전 포스터

인물화는 맑고 투명하면서 신비한 피부색을 내기 위해 오일 페인팅을 한후 그림의 물감이 손에 묻지 않을 정도로  말려 가면서 어느 정도 마르면, 채색층을 겹쳐서 투명하게  2 - 3중 다시 층층이 칠하는 이중법(二重法)을 사용한다. 그림이 도자기 빛깔처럼 투명하고 유리알 같게 하기 위해서는 유화물감 만으로는 부족하여, 밀랍을 델리키트하게 섞어서 바르고 마른후, 다시 물감을 겹겹이 투명하게 바른다. 이게 유화의 채색 기본 방법 그레이징 기법이다. 그래서 그림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서양명화의 이탈리아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도 중색법(重色法)을 사용했다.  반면에 극장간판 그림은  A + B + C 색을 믹서(혼합)해 바르는 혼색법(混色法)이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청람재에서 김호걸 화백 -좌측 과 송영기 기자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청람재에서 김호걸 화백 -좌측 과 송영기 기자

수년전 전시 도록에 있는 유준상 미술평론가의 김호걸 화가 「누드」에 대한 글을 읽었다. " 서양화의 누드는 지겨울만큼 흔한 데, 우리화단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고 기피하는 기미까지 보인다. 건전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 깃든다는 말은 그리스인들의 것이었고, 비너스는 알몸으로서의 여성미의 극치이지만, 함부로 범할수 없는 대상이었다. 플라톤은 「천상의 미신 (美神) 」과  「지상의 미신」을 구별 했는데, 현세의 K · 클라크도  「벌거벗은 여체」 와 「누드」는 구별하고 있다. 물질적 지식과 정신적 지혜가 균형있게 조화될 때 훌륭한 누드 작품이 창조된다. 김호걸(金虎杰)의 「누드 」는 싱싱하고 건전한 존재의 기술이며, 실체적인 개별로써의 삶을 표현하고, 여체가 취하는 찰나적인 동태를 통해 삶의 현존성을 기록하려는 게 모티브이다. 그들은 오늘을 살고 있는 한국인의 외형들이다."고 말했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청람재 전시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청람재 전시실

누드 모델들은 결혼한 분들인가요 물었더니, "대부분 결혼하지 않은 전문직 직업모델들이고, 한번도 손을 잡아보지 못했다. 고정된 자세가 변했을 때는 이래저래 자세를 고쳐 취하도록 요청해야 할때면 늘 화가가 손짓으로 모션을 이렇게 저렇게  잘 취하도록 설명해 주었다. 그림을 그리다가 햇볓의 기울기가 변해 조명이 달라지면 그 찰나의 순간에 떠오른 영감이 나서, 다른 포즈로 구상을 바꾸어 다시 그려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하루 햇쌀의 명암이 좋은 그림을 그려야 하고, 허용된 작업 시간에 완성하기 위해 몰두했다. 모델이란 직업은 같은 자세를 흐트러짐없이 취해 주어야 하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초보자는 좀 하다가 힘들어 그만 두는 이도 있다" 고 설명했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청람재 전시관 입구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청람재 전시관 입구

 
김호걸(金虎杰, KIM, HO-GEOL)

1934 경상북도 영주 출생

1957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경력

1962 - 1975 중등학교 미술교사(삼선중,경동고, 경복고)

1975 - 1991 경희대,세종대, 상명대, 동국대, 동덕여대 미술대학 출강

1980 - 2022 동아일보 문화센터, MBC문화센터, 롯데문화센터 출강

1984 제2회 대한민국 불교문화예술대전 심사위원(서양화)

1987 제6회 대한민구 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서양화), 서울시 미술대전 심사위원

2016 제10회 대한민국 미술인의날-본상 수상(한국미술협회)

개인전 1976 ~ 2019  총 8회

단체전 1956 ~ 2018  총65회

작품소장처 : 서울시립미술관, 고려대학교 박물관, 휘목미술관, 롯데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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