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비천당에서 가을 석전제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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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비천당에서 가을 석전제 거행
  • 송영기 기자
  • 승인 2024.09.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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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공기2575년 성균관 가을 석전제 전경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공기2575년 성균관 가을 석전제 전경

[서울=글로벌뉴스통신]  2024년 9월10일(화. 음력 8월 8일 정축 丁丑) 오전 10시에 공기2575년 가을 석전행사가 성균관 비천당(丕闡堂)에서 성균관(관장 崔鐘秀 봉행위원장) 주최로 열렸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성균관 가을 석전제 팔일무 단원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성균관 가을 석전제 팔일무 단원

올해는 성균관 대성전(大成殿)의 노후 보수로 말미암아 부득이 성현들의 위패를 이안(移安)하여 가을 음력 8월 첫 상정일(上丁日)에 비천당에서 거행하게 되었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성균관 가을 석전제 헌가(軒歌) 편종 3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성균관 가을 석전제 헌가(軒歌) 편종 3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헌가軒歌의 진고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헌가軒歌의 진고

이번 제관(祭官) 천망록(薦望錄)에 의하면 초헌관 박재완(朴宰完, 성균관대 이사장), 아헌관 정해옥(丁海玉, 성균관 부관장), 종헌관 박승원(朴勝元, 반남박씨대종중 부도유사)이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좌로부터 초헌관 박재완 성균관대 이사장,  아헌관 정해옥 성균관 부관장, 종헌관 박승원 반남박씨 대종중 부도유사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좌로부터 초헌관 박재완 성균관대 이사장, 아헌관 정해옥 성균관 부관장, 종헌관 박승원 반남박씨 대종중 부도유사

청명한 푸른 하늘 따가운 가을 날씨의 무더위로 인하여 팔일무단 64명 남녀 단원 중에 대열에서 2명정도가 잠시 쓰러지기도 했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왼쪽 첫째 최종수 성균관장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왼쪽 첫째 최종수 성균관장

고관대작의 제복(祭服)을 입은 초헌 아헌 종헌 제관들의 분헌례와 종헌례를 하는 1시간 20분 정도 긴 시간 동안 등가(登歌)와 헌가(軒歌)의 장중한 문묘제례악과 함께 어울리는 일무(佾舞)의 화려하고 장엄한 팔일무(八佾舞)가 볼거리였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문묘제례악 등가(登歌) 편종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문묘제례악 등가(登歌) 편종 

여기서 일무는 제향을 받는 신위의 지위에 따라 제례 춤을 추는 단원의 숫자가 많고 적음이 있는 데, 공자님은 천자(天子)와 같이 최고의 등급 팔일무(八佾舞)이다. 즉  한줄에 8명씩 여덟 줄로 늘어서서 총 64명이 영신(迎神), 전폐(奠幣), 초헌(初獻禮) 때 추는 문무(文舞)와 아헌(亞獻) · 종헌(終獻禮)때 추는 무무(武舞)를 춘다. 문무와 무무를 출 때 각각 머리에 쓴 모자를 바꾸어 쓰고, 또한 오른손과 왼손에 든 것을 교체하여 쥐고 일무(佾舞)하게 된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시자) 팔일무 문무(文舞)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시자) 팔일무 문무(文舞)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팔일무 무무 武舞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팔일무 무무 武舞

예전에는 음악과 춤은 예악(禮樂)으로 구비되어야 했고 숭상하였다. 그리고 천자도 당에 올라 마치고 복주(福酒)와 조육(俎肉)를 드는게 영광이었다고 한다. 석전제에서 종헌관이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 신위(神位) 앞에 꿇어 앉아 세번째 작(爵)을 올리는 의식이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초헌이 끝나고 아헌을 하기전 문무 文舞가 들어가고, 무무武舞가 들어 오며 일제히 앉아 모자와 손에 쥘 일무 도구를 교체한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초헌이 끝나고 아헌을 하기전 문무 文舞가 들어가고, 무무武舞가 들어 오며 일제히 앉아 모자와 손에 쥘 일무 도구를 교체한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헌작하러 가기 전에 손을 씻는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헌작하러 가기 전에 손을 씻는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아헌관 정해옥 부관장 (왼쪽)이 헌작하기위해 비천당으로 이동,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아헌관 정해옥 부관장 (왼쪽)이 헌작하기위해 비천당으로 이동,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헌작후 제자리로 돌아옴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아헌관 정해옥丁海玉 부관장(왼쪽)이 헌작후 제자리로 돌아옴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헌관들의 등뒤 장식 후수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헌관들의 등뒤 장식 후수

 

배포한 석전봉행 순서에 의하면 '초헌관이 공자의 신위 앞에 예제(醴祭)를 담은 첫번째 작을 올리면 음악을 잠시 멈춘다. 대축大祝이 초헌관의 왼쪽에서 동향東向하여 꿇어 앉아 축문을 읽으면 음악이 다시 연주된다' 고 하며, '독축이 끝나면 초헌관이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의신위 앞에 차례로 작을 올린다.' 그리고 절은 모두 사배(四拜)를 한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등가의 편경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등가의 편경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헌가의 편경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헌가의 편경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명륜당에서 비천당으로 이동하는 제관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명륜당에서 비천당으로 이동하는 제관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성균관 명륜당 앞에서 제관들의 단체사진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성균관 명륜당 앞에서 제관들의 단체사진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행사장으로 제관들 이동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행사장으로 제관들 이동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명륜당 앞 마당에 있는 문묘 은행나무. 조선 중종 때 윤탁 선생이 뜰에 심고, "뿌리가 깊으면 가지와 잎이 반드시 무성하게 된다" 고 하였으며, 문행 文杏이라 불렀다. 은행나무는 유교의 상징적인 나무로,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옛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명륜당 앞 마당에 있는 문묘 은행나무. 조선 중종 때 윤탁 선생이 뜰에 심고, "뿌리가 깊으면 가지와 잎이 반드시 무성하게 된다" 고 하였으며, 문행 文杏이라 불렀다. 은행나무는 유교의 상징적인 나무로,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옛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성균관 초입에 있는 하마비 下馬碑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성균관 초입에 있는 하마비 下馬碑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일제시대 찍은 그림엽서에 보이는 명륜당 앞 뜰에 은행나무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일제시대 찍은 그림엽서에 보이는 명륜당 앞 뜰에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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