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글로벌뉴스통신] 지난해 24인의 분야별 전문가들이 현대불교신문 「불교 인문학 살롱」에 1년간 연재하여 교계는 물론 세간의 화제를 모은 글들이 3월을 맞아 연암서가에서 『붓다의 길을 따라』 란 제목을 달고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책은 대표저자 엮은이 맹난자, 공동저자 유한근 김호주 정약수 박양근 문윤정 김은중 지혜경 홍혜랑 송마나 이광준 법념 임길순 노정숙 김태진 황다연 성민선 정진원 박순태 조정은 백경임 김산옥 이명진 김대원 등 24인이 자신의 전공예 따라 다섯 분야로 나누어 실었다.
제1부 불교로 물질주의에 경종을 울린 작가들, 제2부 붓다와 서양 철학자들, 제3부 지혜 반야의 길, 제4부 마음에 녹아든 경전의 말씀, 제5부 수필로 쓴 나의 구법기로 구성되었다.
[책을 열며]
왜 인문학인가? 인문학은 인간이 바로 서는 데 기본이 되는 지침(指針)의 학문이다. 인간의 가치와 도덕성이 상실된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물질주의를 극복하는가? 이 같은 과제를 앞에 두고 문학, 역사, 철학에 기반을 둔 스물네 분의 문자반야(文字般若)가 모였다.
이 책의 1부에서는 백거이, 잭 케루악, 게리 스나이더,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오노레 드 발자크 등 ‘불교로 물질주의에 경종을 울린 작가들’이 소개되고, 2부 ‘붓다와 서양 철학자’에서는 데이비드 흄과 카를 마르크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질 들뢰즈,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견해를 경청한다. 3부 ‘지혜 반야의 길’에서는 역사적인 인물 스즈키 다이세쓰, 향곡선사, 경허스님, 선각자 이탁오와 허균의 발자취를 짚어보고, 4부 ‘마음에 녹아든 경전의 말씀’에서는 『반야경』, 『화엄경』, 『유마경』, 『승만경』, 『숫타니파타』의 말씀을 듣는다. 5부 ‘수필로 쓴 나의 구법기’에는 봉인사, 무량사, 부탄 등지에서 체험한 구법기(求法記)를 실었다.
[책 속으로]
불교와 문학이 만나는 자리를 나는 ‘깨달음’의 자리로 인식한다. 그 자리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은 다를 수 있지만, 그 궁극적인 도달점은 그곳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깨달음’을 다른 이름으로 지혜라 지칭할 때, 불교와 문학의 접점은 자명해진다. 불교의 깨달음의 길이 여러 길이 있듯이 문학의 경우에도 장르에 따라 그 길이 달라진다.
시의 경우에만 보아도 시의 경향이 다양한 것처럼 고대시의 경우에도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백거이 시의 경우에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그의 시의 경향은 이백의 활달하고 판타지적인 시의 경우와는 달리 두보 시의 경향에 속하지만, 리얼리티한 현실적인 시 경향에 유·불·선 사상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보와는 변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공리성을 중시하는 문학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의 미국 불교는 미국 사람들이 사는 풍경과 문화를 변형해 왔고, 아직도 변형하고 있다. 비트들은 그들이 추구하고 습득했던 불교를 통해서 미국 사회에 중요한 문화적 유산뿐만 아니라 정신적 유산도 함께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케루악은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러한 시도의 흔적이 최초로 나타난 작품이 『길 위에서』이며, 이러한 시도가 『제라드의 비전』으로 연결되며, 『달마 행자들』에서 그것이 꽃을 피운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미국 선이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세 작품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선이라는 모티프를 제공하여 미국 선을 대중화한 작가이다. 이것은 마치 보리 달마대사가 중국 선의 초조(初祖)가 되어 육조 혜능대사에 와서 중국 선이 완성되듯이, 스즈키 다이세쓰 박사가 미국 선에 이론을 제공하여 케루악이나 게리 스나이더(Gary Snyder)를 통해 미국 선이 대중화되는 기폭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미국 선불교는 일본의 정통적 선(禪)에서 1950년대 비트 선, 1960년대의 히피 선, 1970년대의 뉴에이지 선 그리고 1980년대의 사이버펑크 선으로 연결된다고 하겠다.
스나이더는 그의 생태주의와 선불교 사상을 결합해서 다양한 시적 이미지로 표현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진정한 전이(轉移)의 시로서 동양과 서양의 가장 유익한 예술과 철학을 흡수하고 통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으며, 그의 이러한 방식은 후세의 시인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이미지 중에서 그의 시론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쇄석(碎石)’이라고 볼 수 있는데, ‘쇄석’은 산에서 말이 다니기에 좋은 길을 만들기 위해서 미끄러운 바위 위에 놓는 자갈을 가리킨다. 그의 첫 시집의 제목이 『쇄석(Riprap)』이며, 그 시집에 담긴 시들은 미국 북서부 지역의 거친 삼림지대를 소재로 하면서, 그 표현 방식은 선불교의 직관적인 표현과 깨달음을 위한 수련 방식을 사용한다. 그는 시를 정의하면서 쇄석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시는 형이상학의 미끄러운 바위 위에 놓이는 쇄석”이라고 표현한 바가 있다. 그는 바위를 부수어서 쇄석을 만들어 미끄러운 산길을 가는 말을 도와주듯이 시를 통해서 생태주의와 선불교 사상이란 추상적인 관념을 시의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그의 독자들을 보다 쉽게 이해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1951)을 위시한 그의 장단편 대부분은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 중반까지 약 10년간에 걸쳐 집필되었다. 이 시기는 샐린저가 서구형의 세속적인 욕망과 동양의 경건하고 종교적인 삶 사이에서 방황하던 때와 일치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은 그 당시 샐린저의 분신이라고 할 만하다. 그 후에는 소설(시와 드라마를 쓰기도 함)보다는 종교적 삶에 전념하였다. 그는 태생적으로 완벽주의적이고 선악의 이분(二分)이 분명했다. 소설의 익명성에 자신을 담았던 후반기에는 “선사상에 심취하여 명상과 글쓰기를 동등한 것으로 여겼고, 자아를 떨쳐내려고 노력했다”는 심중의 고백처럼 결국 초연한 삶을 택하였다.
원인과 결과는 관념의 일정한 연속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인과 관계에 대한 지식은 추론에 의해서 선험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특정한 대상들이 서로 지속적으로 결합된다는 것을 발견할 때 얻어지는 경험으로부터 생긴다.” 이것이 흄의 생각이다. 자연의 운행에서는 유사한 대상들이 지속적으로 서로 연접해 나타나며, 정신은 습관적으로 하나를 보고 다른 하나도 출현할 것이라고 추리하도록 결정되어 있다. 연접과 추리, 이 두 가지 사실이 우리가 사물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 필연성 전부를 만들어낸다. “유사한 대상들의 지속적인 연접이 없다면, 그리고 연접을 보고 나서 하나로부터 다른 하나로 추리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필연성이나 연관성에 대한 개념은 우리에게 전혀 생겨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이 알고 있는 진리는 객관적이지 않고 주관적이며 심리적이라고 흄은 생각한다.
불교와 다르게, 마르크스주의는 인간 삶의 고통의 원인을 ‘자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아닌 외부의 경제구조에서 찾았다. 인간은 스스로 이해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하는 힘인 생산력에 종속되어 살고 있다. 생산력이란 생산수단과 생산수단을 작동시키는 이의 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돌절구로 농작물을 가공할 때, 돌절구와 돌절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능력을 합하여 생산력이라고 부른다. 생산력에 따라 생산 관계가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사회구조가 형성된다. 생산력이 달라지면, 생산 관계가 변화하고 사회구조 또한 변화하게 된다. 근대 이전에는 생산력이 높지 않았고, 생산력에서 인간의 노동에 대한 기여도가 컸기에 소외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생산력이 높아지면서 잉여생산물이 발생하였고, 잉여생산물에 대한 권한이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자본가(유산계급)에게 주어지면서 노동자들(무산계급)은 자신의 생산물과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었다.
낱말들의 의미는 그것들이 지칭하는 대상이 아니라 ‘낱말들의 사용’이라는 점이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이다. 그에 있어서 언어의 의미란 어떤 대상에 붙어 있는 인식표시 같은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망치’란 낱말은 뒤의 문장에 따라 흉기가 될 수도 있고 이로운 도구가 될 수 있듯이 언어의 의미는 우리가 낱말들이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발견함으로써 드러난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어떤 낱말이 사용되는 언어-놀이 내의 어떤 명제에 적합하게 들어맞는가를 추적함으로써 그 낱말의 의미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 기호를 사용할 때, 마치 한 대상이 그 기호와 더불어 존재하기를 기대한다. 이렇게 되는 오류는 우리가 항상 ‘이름’들에 대응하여 실재하는 대상을 찾기 때문이다. 그러나 낱말들이 표상하는 본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점이다.
이제 눈 밝은 국민들은 누가 국민의 뜻, 법과 원칙에 따라 행업을 실천 또는 감당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 올 이 시대의 지도자인지, ‘현명한 정치지도자가 나라를 보호하고 지키는 지혜의 완성’인 “인왕반야경”을 가늠자로, 언제 올지 모르는 천지재앙을 극복하는 원력과 그 의지처가 되길 소원한다. 이야말로 1600여 년 전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호국의 화신이던 ‘인왕반야경'을 먼지 쌓인 장경각에서 이끌어내어 이 시대의 살아있는 찬란한 말씀으로 되살린 이유이자 국민통합과 국난극복의 간곡함 아니겠는가.
[추천사]
종통과 설통은 연기적으로 원융된다. 종교적 체험은 보편적 설명 없이는 전달되지 않는다. 불교의 진리는 인문학의 뗏목을 타고 대중 속으로 스며든다. 본문에 나오는 게리 스나이더의 표현대로, “인문학은 불교의 미끄러운 바위 위에 놓이는 쇄석이다.” 그 덕분에 대중들은 미끄러지지 않고 불교의 가르침에 다가간다.
여기 스물네 분의 문자 반야가 있다. 한국 불교 인문학의 생생한 현장이다. 한 분 한 분의 지성인이 평생에 걸쳐 천착한 인문학적 주제가 종교적 진실과 만나 불꽃이 튄다. 세간의 지성이 출세간적 진리와 만나 시공간을 초월하는 체험을 하고, 그 값진 기록을 남겼다. 그 체험은 화려한 깨달음이 아니라, 오히려 이 시대 지성인의 고뇌를 고백한다. 무엇을 드러내기 위한 글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실존 자체를 보여준다. 매일매일 진실되게 살아가는 삶, 그 자체가 바로 불교 인문학의 진면목이다. 수불스님(안국선원 선원장, 부산불교방송 사장)
[책 목차]
책을 열며: 문자반야(文字般若)를 뗏목으로
제1부 불교로 물질주의에 경종을 울린 작가들
1. 사나 죽으나 별반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노라: 백거이의 삶과 문학 세계_유한근
2. 전후 미국의 정신을 바꾼 작가: 잭 케루악과 불교_김호주
3. 시어로 녹여낸 선(禪)과 생태주의: 게리 스나이더와 불교_정약수
4. 물질주의에 경종을 울리다: 샐린저와 선(禪)적인 깨우침_박양근
5. 탐욕에서 벗어나라: 발자크와 불교_문윤정
제2부 붓다와 서양 철학자들
6. 우리의 지식은 인상의 감정에 불과하다: 흄의 해방과 붓다의 자유_김은중
7. 삶의 고통에서 해방하라: 마르크스주의와 불교_지혜경
8. 인도 철학을 서구에 알리다: 쇼펜하우어와 『우파니샤드』_홍혜랑
9. 부처의 나무는 그 자체가 리좀이 된다: 질 들뢰즈의 ‘차이 생성’과 ‘연기론’_송마나
10. 중관(中觀) 사상에 나타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관: 비트겐슈타인과 불교_맹난자
제3부 지혜 반야의 길
11. 서구에 선불교를 알리다: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의 삶과 학문_이광준
12. 중이 할 것이라곤 공부밖에 없다: 향곡선사(香谷禪師) 일화_법념
13. 무애행, 대자비심의 발로: 경허스님의 무애행_임길순
14. 선각자는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다: 이탁오와 불교_노정숙
15. 깨우치니 삼라만상이 모두 공(空)이더라: 허균과 불교_맹난자
제4부 마음에 녹아든 경전의 말씀
16. 현명한 지도자와 지혜의 완성: 『인왕경』_김태진
17. 우리 인생은 개인 몫만 아니다: 『화엄경』 만난 인연_황다연
18.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침묵으로 설하다: 내가 만난 『유마경』_성민선
19. 불국토를 지향한 군주: 『승만경』과 진덕여왕_정진원
20. 사시사철 초목이 보이는 순환의 진리: 자연의 시계와 『숫타니파타』_박순태
제5부 수필로 쓴 나의 구법기
21. 번뇌의 불꽃 일으키며: 『화엄경』과 소소 일상_조정은
22. 세상 전체가 ‘나’임을 알았다: 나의 간화선 실참기_백경임
23.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허상이었다: 봉인사(奉印寺)에서_김산옥
24. 부탄에서 환생을 생각하다: 연기법에 대해_이명진
25. 무량사에서 만난 매월당의 시혼: 김시습의 불교와 문학_김대원
엮은이 맹난자 선생은 서울에서 태어나 숙명여자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국문과와 동국대 불교철학과를 수료하였다. 1969년부터 10년 동안 월간 『신행불교』 편집장을 지냈으며 1980년 동양문화연구소장 서정기 선생에게 주역을 사사하고 도계 박재완 선생과 노석 유충엽 선생에게 명리(命理)를 공부했다. 능인선원과 불교여성개발원에서 주역과 명리를 강의하며 월간 『까마』와 『묵가』에 주역에세이를 다년간 연재하였다. 2002년부터 5년 동안 수필 전문지인 『에세이문학』 발행인과 한국수필문학진흥회 회장을 역임하고 『월간문학』 편집위원과 지하철 게시판 [풍경소리] 편집위원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수필집 『빈 배에 가득한 달빛』 『사유의 뜰』 『라데팡스의 불빛』 『나 이대로 좋다』, 선집 『탱고 그 관능의 쓸쓸함에 대하여』 『만목의 가을』이 있으며, 역사 속으로 떠나는 죽음 기행 『남산이 북산을 보며 웃네』와 개정판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기억하라』, 작가 묘지 기행『인생은 아름다워라』 『그들 앞에 서면 내 영혼에 불이 켜진다』(Ⅰ/ Ⅱ), 그리고 『주역에게 길을 묻다』(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 선정), 일어판 『한국 여류 수필선』 외 공저 다수가 있다.
현대수필문학상, 남촌문학상, 정경문학상, 신곡문학 대상, 조경희수필문학 대상, 현대수필문학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지금은 한국수필문학진흥회 고문, 『에세이스트』 편집고문, 『문학나무』 자문위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문인협회 상벌제도위원장으로 있다.
주요저자인 김태진 문학평론가(법학박사)는 국가정보원 발전위원회 사무처장·원사편찬실장, 헌법기관 민주평통 자문위원, 동아대 법무대학원 교수, 연세대 연구위원, 한국헌법학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했다. 〈논, 아득한 성자〉, 〈인왕반야경〉,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헌법스케치〉 등의 저서가 있다.
한국공무원불자연합회 고문, 한반도미래전략연구소장, 한국문인협회· 한국산문작가협회 수필가, (사) 한국ESG학회 부회장, 국제로타리 서울타이거클럽 운영위원, 계간 한국불교문학 편집위원, (사) 만해사상 실천연합 상임감사, NGO‘붓다를 사랑하는 사람들’ 공동대표, 글로벌 문학상 심사위원장· 문화예술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